"하아.."
「 고민이 생겼습니다.
저는요, 어릴 때 그리 풍족하게 지낸 편은 아닌 것 같아요.
깨닫지 못한 채로 지냈지만, 지금 당신과 지내는 걸 생각해보면 예전의 생활과 크게 다르긴 하더라고요.
나에게 많은 걸 준 만큼 나도 많은 걸 주고 싶은데, 그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.
오늘 하루 당신도 많이 피곤했을 텐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더 있을까.
혼자 살 때랑은 다르게 누군가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강할 수가 있다니.
이전에 귀찮다는 이유로 축제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어땠을까, 그렇게 생각하면 소름 돋는 거 있죠.
...이전이 아니라 벌써 1년인 건가? 」
"이런.."
「뭔가가 쿵 떨어지는 소리가 어디서 들려온 건지 감을 못 잡겠어요.
혼자일 땐 지독히도 멈춰 있던 시간을 이리도 빨리 흐르게 하고.
지금도 봐요,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더니 뭔가 떨어지는 소리 조차 내 마음 속 소리로 들리잖아요.
이전부터 당신만 생각하면 머릿속이 기분 나쁠 정도로 어지러워지더니, 아니 물론 당신을 생각하면서 속이 울렁거리는 건 기분 좋은 쪽이지만. 그러니까 그런 걸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..!
당신만 생각하면 행복하게 지내는 미래의 내 모습이 눈 앞을 가려 요즘은 통 집중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.
심장이 이렇게 마구 뛰고, 당신이 나중에 기뻐할 생각을 하면 이렇게 기분이 좋아져요.
내가 지금과 같이 사고를 치게 되더라도 당신 생각하다가 그렇게 된 거라고...
예쁘게 봐 주고 넘어가줄 수 없겠어요? 」
"운하... 저를 위해 준비해 준 저녁이나 편지 모두 귀여우시지만.."
"응.."
"국을 끓이다가 냄비 째로 떨어뜨리는.."
화란은 잠시 말을 멈췄다.
사고가 났을 상황을 상상해보듯 부엌을 둘러보곤 다시 입을 열었다.
"...그렇게 큰 일이 벌어졌었으면 미리 전화를 주셨어야죠."
다른 사람들보다도 덩치가 큰 편인 운하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, 화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달래주었다.
"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? 부엌을 전부 치우는 데에도 고생 깨나 하셨을 텐데.."
"...미안하네.."
"사과하지 않아도 됩니다. 당신이 써 주신 편지는.."
화란은 운하가 사고를 친 직후 변명이랍시고 쓴 (운하에게 있어선 유서와도 같은) 편지를 한 번 더 보고는 작게 웃었다."
"이 편지는 제가 또 따로 보관해야겠는 걸요.. 냄비를 태우신 벌로요."
화란은 괜찮다는 듯 운하에게 웃어주고는 그를 한 번 꼭 안아주었다.
운하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 같이 화란을 안아주었다.
야근까지 마치고 와서 피곤할 텐데 집안에서 자기가 또 사고를 쳤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어떤 마음이었을까. 운하는 괜히 미안해져 화란의 어깨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.
'요리 교실이라도 따로 다녀야 하나...'
화란은 큰 일이 벌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부엌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.
얼룩이 묻어도 발견하기 힘든 싱크대나 나무 무늬 서랍장 문도 새것처럼 반짝였다.
제일 밑 칸 안쪽 구석에 새까맣게 타 들어간 냄비며 그릇 몇 개가 쌓여있는 걸 다시 생각해보면 조금 웃기기도 했다.
자기가 실패한 걸 구석에 꽁꽁 숨겨두고 눈치를 가만히 살피던 게, 정말로 어린아이 같았더랬지.
"운하, 무리해서 꼭 뭔가를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. 배고프셨다면.."
운하는 팔에 힘을 줘 애인을 더 세게 껴안았다. 얼굴은 여전히 어깨에 푹 파묻은 채로.
"...맛있는 거 해주고 싶었는데.."
울먹이는 소리로 어깨를 부비적거리는 운하가, 화란의 눈에는 퍽 사랑스럽게 보였다.
'맛있는 거라..'
굵직한 운하의 팔뚝이며, 좋은 몸을 잠시 눈에 담았다가..
쪽, 그의 얼굴을 들어 입을 맞추어 주었다.
약간 상기된 얼굴의 운하는 오늘 저녁으로 화란에게 다른 걸 준비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.
"...아란..."
눈에 힘을 풀어 사르르 감기게 하곤 다시 한 번 어여쁜 자신의 연인에게 키스했다.
운하는 마구 심장이 뛰어 속이 안 좋아지는 걸 느끼며 마구 그와 혀를 섞었다.
오늘 화란에게 준비해줄 저녁 메뉴가 바뀐 참이었다.
2021. 10. 2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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